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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네버 렛 미 고' 감상평 문화 논평









<스토리>

인간 복제 기술이 상용화된 가상의 영국이 배경이다. 기숙학교 ‘해일셤’에서 캐시(주인공)와 루스, 토미는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성장하는데- 외부 세계와 철저히 격리된, 이곳의 학생들은 장기 기증용 복제 인간이다.

사려 깊고 총명한 캐시는 감정 표현에 서툰 토미를 돌봐주고, 토미 역시 그런 캐시를 아끼지만, 적극적인 루스가 토미에게 고백을 하면서 루스와 토미는 사귀는 사이가 된다. 캐시는 둘의 사이가 오래가지 않기를 바라지만 둘의 관계는 더욱 더 깊어진다. 섹스 장면이 짜증날 정도로 많이 나온다.

기숙학교 밖에 거주할 때 까지도 둘의 관계는 계속된다. 루스는 캐시의 속내를 읽고 ‘토미는 너에게 성욕을 느끼지 않는다’며 캐시에게 폭언을 한다. (...? 뭐야 이게)

이에 충격 받은 캐시는 둘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자신과 같은 복제 인간들을 돕는 도우미가 된다.
10년 후, 캐시는 두 친구와 만나게 된다. 그제서야 토미는 캐시에게 애정 표현을 하지만 루스와 토미 모두 장기 이식 수술을 여러번 겪어서 수명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토미는 자신의 예술 작품으로 담당 공무원을 설득하려 하지만 좌절되고, 결국 캐시만이 남아 둘을 추억하며 안타까워한다.
자신들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감정들이 영화의 핵심이다. 로맨스를 주축으로 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분석>

1, 납득되지 않는 노예 근성

주인공들은 비슷한 소재의 ‘아일랜드’와는 다르게 철저한 격리수용을 겪지 않는다. 심지어 일반 국민과 소통할 기회가 무척이나 많다. 외부와 접촉한 복제인간은 역사책이나 TV등 각종 매체를 접하고 저항 의식이 각성할 기회가 생겼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장폭동이나 테러 등 저항에 대한 묘사가 영화 내에서 완전히 누락된 건 이해할 수 없다.
언론이나 통신망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도 납득을 못 하겠다.
더군다나 이런 상황에선 복제 인간뿐만 아니라 그들과 접촉하는 일반 국민도 복제 인간 정책에 대한 반감이 상승할 것이다.

또 작중 복제 인간들은 어려서부터 집중적으로 예술 관련 학습을 하는데, 예술 평론가들이나 문학 문단 등에서 발굴한 인재가 없을 리가 없다. 그러다보면 일반 대중도 그들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있을 것이기에 그들의 인간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심지어 작중 설정보다 훨씬 앞선 소설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은 50년대 소설인데도 로봇의 인간성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사람의 감성이 로봇도 사람으로 만드는데 하물며 복제 인간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또한 복제 인간이 임신했을 경우엔 국가에서 어찌 대처하나 의문이었다. 영화 보는 내내 궁금했다. 복제 인간이 아무리 세뇌가 잘 되었어도 피임엔 결사적으로 저항할 것이다. 복제 2세나 낙태에 대한 이야기는 왜 누락되어 있는가? 대사가 한 줄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2,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연출과 대사

⑴ 작중 인물인 ‘루시’는 자신의 오리지널을 찾다가 좌절되자 절규한다.
‘난 원래 알고 있었어, 내 오리지널이 창녀 같은 여자일 거라고!’라고.

영화를 보는 관객은 당장에 이 대사를 이해할 수 없는데, 왜 루시가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일체 설명도 없이 나온 대사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시작선에 있는데 등장 인물만 감정이 과잉되서 달려가고 있다.
나아가, 애초에 복제 인간이 자기 오리지널이 어떤 사람인지환상을 품고 또 기대감과 자부심을 가질 거라는 가정이 크게 잘못되었다. 너무 순진한 상상력으로 보인다. 차라리 ‘아일랜드’처럼 오리지널에게 증오심을 품는 게 더 와닿는다.

⑵ 개인적으로 최악이었던 장면은 ‘토미’가 자신의 생명 연장 계획이 좌절되자 달리던 차를 세우게 한 뒤 발작적으로 소리 지르던 장면이었다. 너무나 ‘연극처럼’ 절규한다.

⑶ 작중 주인공 ‘캐시’는 앞서 말했다시피 도우미가 돼서 다른 두 주인공보다 좀 더 건강하게 오래 산다. 사람이 더 건강하게 더 살고 싶은 것은 본능적으로 당연한 행동인데 다른 복제 인간들은 도우미가 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치, ‘귀찮으니까 일찍 죽어버려야지’ 하는 것처럼.

⑷ 기숙학교 ‘해일셤’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담장은 커녕 펜스도 없기 때문이다. 원생들의 탈출을 막는 장치로 선생들이 괴담들을 만들었는데, 어린 아이들이 그 정도 괴담으로 바깥 모험을 하지 않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괴기스러운 소문을 들으면 오히려 앞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게 그 나이 또래의 생각이다.
그런데 영화 내의 소년들은 지나치게 호기심이 없다. 단 한건의 이탈 소식이 없었다는 것은 비정상이다. 무엇보다 학교 안에 경비도 없는데, 복제 인간들의 탈출을 막는 당직 근무는 누가 서는가?



<총평>

소재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영화다. 앞서 설명한 설정 구멍 때문에 감동이 크게 반감되어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실패했다. 스토리의 세세한 개연성은 작품 설정에 대한 신뢰감을 좌우하는데, 이 영화는 그 점에서 완전한 실패작이다. 조그만 균열로 인해 박살난 댐과 같은 영화다.
장점은 초반부 뿐인데, 주인공들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훌륭히 묘사한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를 러닝타임마다 따로 뽑았나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배경도 전원적이고 아기자기하고 음악과의 조화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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